2026년 3월18일 음력1월30일 신묘일 '河東郡(하동군) 花開面(화개면) 井琴里(정금리) 산100' 응기는 玉女彈琴(옥녀탄금)의 형국을 드러냈다. 이는 결국 시끄러워질 운수라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며 지금의 응기와 현실이 대전쟁을 향해서 나아갈 것을 알고 보면 이 시끄러워질 운수가 무엇인지 드러난다. 특히 玉女(옥녀)니 仙氣(선기)가 움직인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 이런 운수가 어디로 부터 나왔는지 가리키고 있다. 智異山(지리산) 三神峰(삼신봉)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지맥을 따라서 서남쪽에서 응기가 나타나며 '꽃이 핀다'인 花開(화개)로 가리키고 있다.

開花(개화)는 '꽃을 피운다'가 되니 2025년 10월3일 음력8월12일 을사일 '保寧市(보령시) 聖住面(성주면) 開花里(개화리) 산29-5' 玉馬山(옥마산) 자락 응기는 꽃을 피우는 과정이 시작되었다는 의미다. 이로부터 167일차에 花開(화개)로 꽃이 핀다는 것을 가리켰다. 여기서는 어학적 요소를 통해서 정확히 그 차이점을 봐야 한다. 즉 '꽃을 피운다'인 開花(개화)와 '꽃이 핀다'인 花開(화개)의 차이를 명확히 봐야 한다는 의미다. 오늘은 2026년 3월18일 음력1월30일 신묘일 '河東郡(하동군) 花開面(화개면) 井琴里(정금리) 산100' 응기로 부터 97일차며 3일후면 지번을 따라서 100일차가 된다.
꽃을 피운다는 것은 시작 단계이며 꽃이 핀다는 현재의 상태라 그 뉘앙스가 다르다. 그런데다가 2025년 10월3일 음력8월12일 을사일 '保寧市(보령시) 聖住面(성주면) 開花里(개화리) 산29-5' 玉馬山(옥마산) 자락 응기로 '성스러움이 머문다'인 聖住(성주)에서 263일차 오늘 6월22일 음력5월8일 정묘일 '錦山郡(금산군) 富利面(부리면) 於在里(어재리) 산45-1' 兩角山(양각산) 자락 응기로 '성스러운 주인'인 聖主(성주)의 상태 변화를 가리켰으니 이 꽃이 핀다는 것이 萬年古木(만년고목)에 꽃이 피는 것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서 살펴보면 역시 지난 2025년 11월23일 음력10월4일 병신일 꿈이 그냥 꾼 것이 아니며 에티오피아 하일리 구비 화산이 12000년만에 폭발한 것도 그냥 벌어진 일이 아니란 것을 응기가 가리키고 있다. 이로부터 215일차가 곧 3월18일 음력1월30일 신묘일 '河東郡(하동군) 花開面(화개면) 井琴里(정금리) 산100' 응기에서 지번을 따라서 100일차로 6월25일 음력5월11일 경오일로 겹친다. 이렇게 지금까지 이어진 현실과 응기는 같은 방향성으로 한가지 미래를 가리키고 있다. 결국 대전쟁과 병겁이 터져 나올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눈앞의 이익에 미쳐 돌아갈 때 응기와 현실은 한결같이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니 더더욱 기괴한 모양이다. 神人脫衣(신인탈의)의 과정이 일찍 시작되었다고 밝힌 것처럼 현실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응기는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조짐은 兵禍必致(병화필치)의 운수가 온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이라 대비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눈앞의 이익에 눈이 뒤집어져서 돈과 재물만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운수는 목숨이 경각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모르니 기괴하다.
아나모르나 오는 운수를 어찌할수 없지만 몰랐다고 그냥 운수는 넘어가지 않지만 막상 운수가 터지면 상황이 완전히 바뀐다. 결국 그때까지 사람들은 살던대로 살겠지만 막상 그날이 오면 갑자기 온것처럼 여길것이다. 손도 안대고 코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성향으로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하다. 태양의 위치도 南方七宿(남방칠수)의 머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水氣(수기)가 돌 때가 다가온다고 가리키고 있다. 이러니 알고보면 세 번째 전쟁인 이란 전쟁에 이어서 응기적 전개와 함께 태양의 위치 또한 변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6월25일을 지나고 나면 이제는 221일의 도수만 남는다. 그 때도 이번주 목요일로 3일후가 6월25일이다. 이렇게 도수의 간극을 하늘과 땅이 시간적 간극을 두고 운수의 흐름을 드러내는 이유는 명백하다는 것을 알고 볼 필요가 있다. 막상 예언한 내용이 현실이 되면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보일까? 사람들이 그동안 풀어놓은 세상에서 우루루 몰려다니며 행복과 편이를 위해서 살아왔지만 정작 일이 터지고 나면 무엇을 위해서 살았는지 후회가 밀려오기 마련이다. 정작 과학의 발전과 무역으로 인하여 풍요해졌지만 내면적 빈곤은 피할수 없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오히려 많이 가진것이 불행의 원인이 되어버린것 같은 지금 세상을 보면 오늘도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왜 분주한지 정확히 인지못한 상황에서 목적없이 방황하는 것으로 보이니 이상하다. 수많은 예언을 하며 오늘에 이르렀지만 이제 그 마지막 단계가 다가오니 오히려 이상한 느낌이 든다. 무엇인가 가슴이 답답하고 무엇인가 일을 하지 않은 느낌이 자꾸드니 말이다. 어느순간에 왜 그런지 그것을 깨닫게 되겠지만 세월의 흐름속에서 기이한 불안감이 증가하는 것이라 영 개운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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