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예언서가 예언한 내용을 해석하면서도 "開闢(개벽)이 올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예언과 현실은 그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언서의 해석은 해석이고 그것이 실제로 되는지 안되는지는 가봐야 하는 문제였다. 그런 상황에서 예언서 해석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며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언제냐?"의 문제지 결국은 피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예언서의 해석이 재미 있어서 해석을 시작한 것이지 종교를 믿어서도 아니었으니 하물며 開闢(개벽)이 반드시 온다는 생각은 애초에 안했다. 오히려 예언도 검증이 필요하고 되어봐야 알지라는 냉정한 시각이었다.
처음에는 어학적 관점에서 더 흥미가 가서 예언을 시작했지만 2012년과 2013년에 거의 매일 꿈에 시달리면서 더더욱 예언서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2013년 1월부터는 아예 그 꿈을 내용을 날짜 단위로 기록했고 아직도 그때 꾼 꿈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런데다가 가위에 얼마나 눌렸는지 거의 매일 고통스러운 세월이 이어졌다. 그 당시에는 일종식을 이어가는 상황이었지만 현실마저도 감당하기 어려운 운수가 밀려와서 굉장히 힘들었던 시기였다. 블로그 운영을 시작한 것도 어찌보면 기록과 복기를 위한 과정으로 시작했던 면도 있었다. 왜 그렇게 꿈에 시달려야 했고 현실적으로도 어려웠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요즘도 꿈을 꾸지만 2012년과 2013년에 비할수 없다. 그런데 어느듯 그 세월도 15년이 되었다. 이 세월동안 가면 갈수록 예언은 더 무거워졌고 大勢(대세)의 흐름은 예언한 내용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2012년 임진년에서 15년차가 2026년 병오년이니 어떻게 보면 이 세월이 사람들에게 예언서의 예언을 해석하며 미래를 예언한 시기였다. 지금은 다지나서 하는 말이지만 어떻게 그 세월을 뚫고 오늘에 이르렀는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사실상 지금도 2012년과 2013년에 꾼 꿈을 검증하는 과정이며 그 고통스러웠던 일들이 왜 벌어졌는지 아직도 모두 확인하지 못했다.
이것도 알고 보면 영혼과 정신의 문제다. 특히 응기중 魂神池(혼신지)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이제 그 답을 알 때가 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古坪里(고평리) 바로 옆이 柳等里(유등리)며 위 지형도에서 버드실에서 닭구멕(=닭 목)을 거쳐서 이슬미나 오부실로 넘어왔다고 한다. 이 버드실이 유등곡리이며 앞산은 봉란산이고 산등은 알뫼뜽이라고 한다. 용이 못된 이무기를 이슬이라 하는데, 이슬이 살고 있는 곳이라 하여 이슬미라고 한다고 전하며 이슬미는 오부실 앞의 한내강(=청도천)이 풍각면에서 각남면으로 곧게 내려오다가 질매 끝에서 한번 굽이치고 이슬미에서 아주 많이 구부러진 곳이라고 하니 魂神池(혼신지) 바로 앞에서 淸道川(청도천)이 안으로 꺽여 들어온 부분이 그곳으로 보인다.
酉谷(유곡)이라 했는데 柳谷(유곡)으로 바뀌었고 버드실로 알려졌다고 하니 의미가 있다. 이런 지형적 배경에서 4월26일 음력3월10일 경오일 '淸道郡(청도군) 華陽邑(화양읍) 古坪里(고평리) 204-7' 魂神池(혼신지) 옆 응기가 나타났다.

영혼과 정신의 연못인 魂神池(혼신지)가 나타나며 '풀과 나무가 연못에 임한다'인 草木临渊(초목임연)을 가리키고 있다. 이로써 '환한 해가 진다'인 白日沉沉(백일침침)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가리켰다. 이 중국 사도인의 2025년 예언은 신기하게도 '이서구 비결'에서 '한 마리 말과 두 양이 웃고 또 우니 가련한 사람의 일이 해가 서쪽으로 기우는 것이라'인 '一馬二羊笑且啼(일마이양소차제) 可憐人事日斜西(가련인사일사서)'와 겹치고 있다. 이미 밝혔듯이 一馬(일마)를 甲午(갑오)로 보면 갑오월이 되고 '가련한 사람의 일이 해가 서쪽으로 기우는 것이다'로 상황을 더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응기가 4월26일 음력3월10일 임진월 경오일에 나타났지만 지번을 합한 211일의 도수가 2025년 11월23일 음력10월4일 병신일에서 211일차 6월21일 음력5월7일 갑오월 병인일에 닿으니 운수로 볼 때 가련한 사람의 일이 해가 서쪽을 기운것과 같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欲識人間生活處(욕식인간생활처) 叢林飛鳥下疎籬(총림비조하소리)
- 인간이 생활하는 곳을 알고자 한다면 잡목이 우거진 숲에 날으는 새 아래 성긴 울타리라고 하리.
一馬二羊笑且啼(일마이양소차제) 可憐人事日斜西(가련인사일사서)
- 한마리 말과 두 양이 웃고 또 우니 가련한 사람의 일에 해가 서쪽으로 기우는 것이라.
方方谷谷東南畝(방방곡곡동남묘) 乙乙弓弓腹背堤(을을궁궁복배제)
- 방방 곡곡이 동남쪽 30평 땅의 을을궁궁의 앞 뒤의 둑이 된다.
猿嘯聲初風正急(원소성초풍정급) 鷄鳴時到雨何凄(계명시도우하처)
- 원숭이가 우는 첫 바람이 진정 급하니 닭이 우는 때에 내리는 비가 어찌 그리 처량한가?
若厭貧窮從富貴(약염빈궁종부귀) 未着黑土死無棲(미착흑토사무서)
비록 빈궁함을 혐오하고 부귀를 쫓지만 만일 검은 흙에 정착하지 못하면 죽어서도 깃들곳이 없다.
<이서구 비결>
젊은 세대가 정신이 오염되어서 부패하고 타락했으니 극우가 되었고 극단적 혐오주의에 물들어서 틀딱 타령이나 하며 종교팔이의 앞잡이가 되었다. 결국 지난 세월에 눈앞의 이익에 발끈하며 가증한 것의 날개가 되었으니 예언서의 예언이 가리키는 때가 다되었다는 것을 역으로 보여주었다. 구원의 힘이 이들을 받아줄리 없으며 지은데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그들의 한심한 상태를 뉴스는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言行(언행)으로 인하여 자신의 영혼과 정신이 오염되어서 망쳤다는 것을 현실로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https://youtu.be/66lyERHGHzQ?si=pLuUfHVslWOdQ4qN
이런 영혼들이 갈곳은 정해져 있다. 검은 흙에 정착하지 못하면 죽어서도 깃들곳이 없으며 그 다음 남은 곳은 나락이다. 자신들의 言行(언행)을 면밀하게 黑土(흑토)에서 보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저렇게 드러내봐야 저들 스스로에게 손해며 그 업보는 고스란히 원처로 돌아간다. 지금은 未着黑土死無棲(미착흑토사무서)가 얼마나 무서운 예언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고 알게될 때가 임박하고 있다는 것을 응기와 현실이 가리키고 있다. 이를 통해서 갑오월과 을미월이 어떤 세월일지를 위와 같이 명확히 예언하고 있다.
일찍 飛鳳山(비봉산) 자락 응기가 이어진 것은 叢林飛鳥下疎籬(총림비조하소리)로 상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잠자는 새에서 날으는 새로 상태가 바뀐 것이며 사람들이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뭐든 한분야를 오래하면 능통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능통해지면 그 실력을 발휘하는 결이 달라지며 가면 갈수록 사통팔달로 명확해지기 마련이다. 하늘의 관리를 받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다. 몰라도 알도록 볶고 알 생각이 없어도 알도록 만들며 도망갈려고 하면 운명으로 얽어맨다. 이것이 지난 15년 세월의 정체다. 선택의 여지는 애초에 없었다.
천 명중에 한 명사는 운수에서 열 명중 한 명사는 운수와 백 명중 한 명 사는 운수로 바뀌는 것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그만한 댓가를 치르도록 만들어서 大勢(대세)를 만들어 왔다는 것을 말한다. 그동안 종교팔이들은 뭐했나? 흘러가는 세월에 자신이 뭐라도 된냥 뒷배에 종교 교주가 있으니 뭐라도 된냥하는 것의 끝이 무엇인지 오늘날 이스라엘이 잘 보여주고 있다.
https://youtu.be/zhZdOAi1-yo?si=eQS3PVvdhrvgwEsd
종교가 얼마나 사악한 영향을 끼칠수 있는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애초에 자신이 누구며 뭐라도 된 냥하다가 세월이 가고 도수가 차면 그 실상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종교의 최악 버전이 무엇인지를 다시 지금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신교와 구교간의 전쟁등 인간이 얼마나 부패하고 타락할 수 있는지는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교인이 늘어서 교세가 늘었다고 자랑할 때가 아니다. 그곳에 알곡이 없으면 모두 헛껍데기로 돌리는 여름 타작 마당이 열린다. 그런 상황에서 교인의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나? 전부 헛껍데기일수도 있는데.
말세에 종교는 안하느니만 못하다고 한 것은 그 업을 더불어서 교인도 지기 때문이다. 거짓이 여지없이 무너질때 다생겁에 쌓인 죄악과 죄업의 때를 자신의 오장육부에 낀 현생의 죄업과 죄악과 함께 영혼에 낀 때마저도 보이면 그 업보의 무게로 별별 일이 다벌어지는 때가 임박하고 있다. 내면에 난 밝음으로 향한 길을 스스로 찾지 못하면 종교란 결국 무너지는 건물이요 침몰하는 배와 같다.
'미래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열린 운수와 응기 - 296.雷聲(뇌성)과 地震(지진) (0) | 2026.06.25 |
|---|---|
| 열린 운수와 응기 - 295.겹치는 예언서의 예언과 응기 (0) | 2026.06.25 |
| 열린 운수와 응기 - 294.예언과 응기 그리고 현실 (0) | 2026.06.24 |
| 열린 운수와 응기 - 293.四明堂(사명당)과 응기 (0) | 2026.06.23 |
| 열린 운수와 응기 - 292.흐름이 가리키는 것 (0) | 2026.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