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이해의 깊이와 차이

성긴울타리 2026. 6. 22.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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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자리를 살피고 지진을 살피는 것은 天文(천문)과 地理(지리)를 살피는 것이며, 雷聲(뇌성)과 우박 그리고 비를 살피는 것은 風雲造化(풍운조화)를 살피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때를 읽는다. 四明堂(사명당) 공사에서 '구름이 하늘을 가린다'인 密雲蔽天(밀운폐천)을 통하여 만12년의 운수가 그럴 것을 정했고 2014년 6월12일 갑인일에서 2026년 6월12일 정사일까지 만12년의 세월이 바로 이 '구름이 하늘을 가린다'인 密雲蔽天(밀운폐천)의 운수였다. 度數(도수)를 채웠으니 바람이 불 것을 가리키며 운수의 흐름도 대전쟁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 

 

옛 예언서에 石井(석정)과 金井(금정)으로 우물 井(정)을 강조한 것은 물의 德(덕)을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며 대지를 적시듯이 생명력의 바탕에 물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물의 德(덕)을 볼려면 大勢(대세)의 흐름에서 '바른 길'을 걸어야하며 '土倭(토왜)와 奸賊(간적) 그리고 黃巾賊(황건적)과 腐儒(부유)'가 되면 안된다. 

以石覆金井(이석복금정) 金井移都否(금정이도부) 金井何處在(금정하처재) 不知是誰覓(부지시수멱)
- 돌로 金井(금정)을 덮어서 金井(금정)이 도읍으로 움직이지 못하니 金井(금정)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면 누가 찾을수 있을까?
金井君子眼(금정군자안) 爲是眞金井(시위진금정) 只恐無遲滯(지공무지체) 唐臣願生國(당신원생국)
- 金井(금정)은 군자의 안목이 진짜 金井(금정)이며 다만 지체하지 말아야 당나라 신하도 태어나기 원하는 나라가 된다.
<國祚盡於八壬(국조진어팔임)>

 

응기가 지난 동지(子)로부터 安井(안정), 井琴(정금), 仙井(선정), 召井(소정)으로 이어지며 金井(금정)의 안목을 가진 사람이 나올 것을 가리키는 것은 의도적으로 그 때를 알리는 것이다. 흐르는 세월과 함께 도수가 차는 것도 있지만 세상에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알림으로써 '대비'를 하라는 것이다. 21번째 劫數(겁수)가 벌어지며 조선과 淸(청)나라가 망했고 다시 200여년이 흐르며 漢陽都城의(한양도성)의 운수를 연장시킨것이 어떤 현재를 만들었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역사의 흐름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옳음과 그름에 의하여 흘러온 것도 아니며 결국 큰 주기의 흐름을 거스를수 없도록 하늘과 땅은 만들었다. 

 

사람들은 세상의 善惡(선악)이 분명히 드러나고 역사적 판단이 명확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역사의 흐름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伊尹(이윤)의 일만 봐도 竹書紀年(죽서기년)에는 구데타를 일으킨 역적임에도 史記(사기)는 희대의 충신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것만 봐도 검은 것이 희다와 흰 것이 검다로 조작하는 일이 인류사에 벌어졌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운수가 늘 善(선)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보면 세상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단순한 도덕적 원리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道(도)와 德(덕)을 교과서에 나오는 윤리로만 보면 이미 틀린 것이라고 한 것이다. 

 

사람들은 一心(일심)을 단순한 고집처럼 여기고 있다. 道(도)와 德(덕)에 의해서 세상이 돌아간다는 것은 교과서에 나오는 倫理(윤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를 위해서 이 道(도)와 德(덕)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一心(일심)으로 인하여 오히려 더 큰 惡(악)을 낳았다면 어떻게 할것인가? 宋(송)나라의 腐儒(부유)로 인하여 역사는 진실보다는 자신들이 추종하는 이념의 결함을 감추기 급급했다는 것을 伊尹(이윤)의 사례 하나만 봐도 드러난다. 천지공사에서 伊尹(이윤)도수가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문제를 직접 대면하게 만드는 목적이 있다. 

 "伊尹(이윤)은 太甲(태갑)을 桐(동)에 유배보내고, 伊尹(이윤)이 스스로 왕이 된다. 太甲(태갑) 7년에 太甲(태갑)이 몰래 桐(동)에서 나와 伊尹(이윤)을 죽이고 그의 아들 伊陟(이척), 伊奮(이분)을 세우고, 부친의 전답과 주택을 나누어 갖도록 명했다."
<竹書紀年(죽서기년)>

 

竹書紀年(죽서기년)이 진실이고 史記(사기)가 거짓이라는 것 이전에 사람의 인식이 조작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라는 의미다. 얼마든지 진리와 진실을 가장한 거짓이 운수를 받아서 무수한 惡(악)을 행할수 있다는 것을 역사는 오래전에 가리켰다. 지금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 당장 지금 경상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바로 이런 문제이며 이로 인하여 앞으로 크나큰 재앙이 와서 엉뚱하게도 죄없는 사람들마저 무수히 죽는 일이 벌어진다. 왜 하늘은 그런 운수를 그냥 두었을까? 또 그런 운수가 역사에 무수히 반복되어 왔을까?

 

사람들은 道政(도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종교적 이념적 고집이 一心(일심)으로 포장되거나 혹은 우루루 몰려 다니면서도 죄를 지으면서도 그것이 죄인지도 모르는 일이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 스스로 피땀 어린 노력으로 이 차이가 무엇인지 극명하게 체험하여 깨닫지 못하면 그냥 책에 나오는 내용을 외우고 그 내용이 옳다라고 여기는 한심한 상태가 一心(일심)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런 마음과 행동으로는 금방 그 밑천이 뽀록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젊으면 젊을수록 현실에서 세상 경험을 많이 해보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도 진실과 진리라고 여기던 것이 얼마나 쉽게 현실에서 무너지는지 충분히 경험하는 것이 좋다. 

 

道(도)를 안다는 자들은 많아도 통달한 사람은 지극히 귀한 것이 지금의 말세다. 학문이 학문으로 그치면 이론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안다고 여기는 것은 쉽지만 그 앎이 진정 깨달음으로 이어질려면 오랜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필자가 종교 판을 극혐하는 것은 명확한 이유가 있다. 그동안 현실을 살면서 무수한 경험속에서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종교의 가르침이 얼마나 눈가리고 아웅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내면으로 난 밝음을 향한 길을 찾지 못하면 결국은 와르르 무너지기 마련이다. 현실에서도 짱짱한 실력은 지독한 노력과 정성으로 성취된 것이지 자신이 뭐라도 된냥하는 한심한 자세로는 얻을 것이 없다. 

 

그럼 대전쟁과 병겁을 거치며 알곡을 가린다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적당히 종교하나 열심히 믿어서 적당히 열심히 한 가운데 남들에게 그리 큰 죄를 짓지 않고 살면 그것이 알곡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하나? 뭐라도 한 마음으로 열심히 하면 발전은 있다. 그것이 운이 좋아서 혹은 잘 알아서 '바른 길'을 가면 좋지만 한 마음으로 열심히 하는 것이 역적질이라면 그 끝이 어찌될지 뻔한 것 아닌가? 역사적으로 볼 때 一心(일심)을 백이와 숙제만이 가진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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