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지방 선거와 재보궐 선거를 두고 각자 목소리를 높혀서 옳니 그르니 하고 있지만 이치로 살펴서 보면 신기할 정도로 젊은 세대의 본래 면목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운수가 작용하고 있다. 경상북도는 이미 "우리가 남이가!"의 최악 버전이 현실로 나타난지 오래라는 것을 오래전부터 드러냈다. 그러니 애초에 그러려니 하면서 봤지만 서울, 평택, 부산 북구 갑의 선거를 보면서 운수가 역시 녹녹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서울의 경우는 일찍 예언한 일이 현실로 나타나며 2030의 의식구조를 고스란히 드러냈으니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2022년 임인년의 '하원갑자 이대남'에 이어서 2026년 병오년에 2030까지 왜 예언서에서 젊은 세대에 대해서 암울하게 예언했는지 현실이 충분히 보여주었다. 다만 이런 와중에 이치적으로 궁금한 것은 송파다. 사람들은 시스템의 허술함과 주관 기관의 탈선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눈에 드러난 것이며 궁금한 것은 왜 운수가 이렇게 작용했는지에 대한 것이다. 徐福(서복)의 해원에 동조하면 30년 功德(공덕)이 날라가는 위태로운 현실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스템이 아니라 운수가 그것을 막기 위해서 작용했다면 누구를 위한 것일까가 궁금하다. 이것은 현 시스템의 문제와 일탈과는 상관없다.
운수는 누군가에게는 吉凶(길흉)으로 작용하며 일찍 예언했듯이 三大將(삼대장)이 무저갱으로 보낼 영혼을 모집하느라 열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2018년 무술년부터 미리 알려주었지만 그것을 걷어 찬것은 각자의 선택이다. 마지막까지 운수가 기묘하게 작용하며 사람들을 훑터내고 있지만 운수에 휘둘리면서도 그 실체를 모르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삶을 보는 안목이 천박해졌다는 증거다.
此十年內(차십년내) 時事大變(시사대변) 壯丁盡死於邊(장정진사어변) 十女仰一夫(십녀앙일부) 十家幷一牛(십가병일우) 其時人民(기시인민) 乞食於頭流山下(걸식어두류산하) 庶可免禍矣(서가면화의)
- 이 십년 안에 시사가 크게 변해서 장정이 변방에서 모두 죽고 열 여자가 한 남편을 섬기고 열집이 소 한마리를 더불어 쓴다. 이때 인민들이 두류산 아래서 걸식을 하면서 가히 재앙을 피하는 구나!
<國祚盡於八壬(국조진어팔임)>
長沙細海(장사세해) 龜坪月坪(구평월평) 由池(유지) 靡有可匱圜(미유가궤환) 龍蛇以東(용사이동) 數百里(수백리)
- 긴 모래 작은 바다가 있는 龜坪(구평)과 月坪(월평)은 연못이 둥글게 궤처럼 돌아있어 용과 뱀이 東(동)으로 수백리라.
周回之地(주회지지) 十歲以上(십세이상) 皆被刀鉅之禍(개피도거지화) 鎭龍以西(진용이서) 猶有餘釁(유유여흔)
- 주변 땅에 10세이상이 모두 칼과 톱의 재앙을 입으니 龍(용)이 서에서 진압해도 오히려 피를 칠하고 남음이 있다.
<國祚盡於八壬(국조진어팔임)>
https://youtu.be/y4Vcgbqy888?si=d3rmtYXgMDkqPtET
젊은 세대가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얄팍한 奸賊(간적)짓을 이어가면서도 그것이 똑똑한것이라고 여기니 파멸의 운수가 이렇게 작용하고 있다. 제꾀에 제가 넘어가서 死地(사지)를 선택한 것을 알고 보면 웃음밖에 안나온다. 저렇게 한심한 꼴이 된다고 예언서가 일찍 예언한 이유를 명확히 드러내는 현실을 보면 뭐랄까, 신기하다. 세상은 '1 + 1 = 2'가 아니다. 똑똑은 커녕 헛똑똑이가 되었니 자멸의 길을 가고 있지만 더 기괴한 것은 자각이 없다. 이것을 진정 알고 보면 더러워서 못본다. 눈앞의 이익에 얄팍하게 굴며 남 이용하고 남을 쉽게 평가하지만 그 초라하고 한심한 자신의 꼴은 못보는 것과 마찮가지기 때문이다.
2022년 임인년과 2026년 병오년에 벌어진 사건을 통해서 완전히 운수가 결정난지 오래라는 것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그것도 음력4월에 이꼴이 났다는 것이 더 웃긴다. 그물을 거둘때가 되었는데 그 때가 되자 와르르 그물에 걸린 것이 되니 말이다. 이래서 일찍 예언하며 三大將(삼대장)과 徐福(서복)의 해원이 가리키는 정체성에 대해서 밝혔는데 아직도 허우적 대는 자들이 넘쳐나니 그것도 어쩔수 없다. 자신들의 선택이 만든 결과니 누구를 원망할까? 75%라는 숫자는 아직 90%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젊은 세대의 꼴을 보면 90%보다 훨씬 높은 숫자가 자멸의 길로 갈것으로 보이지만 말이다.
그냥 세대별로 평균이라 생각하고 봐도 아직 멀었다. 이번 75%는 확정적으로 열 명중 아홉명에 들어간다. 송하비결에서는 九死一生(구사일생)으로 아홉이 죽고 하나 산다고 예언했지만 이는 겨우 살아남은 屈原(굴원)의 일을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이것보다는 격암유록의 十祖一孫(십조일손)이 나은 표현으로 보인다. 지금의 상태로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대전쟁과 병겁으로 탈탈 다 털은 후에야 비로소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현실이 저절로 자격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런 흐름으로 보면 새로운 시대로 들어갈 사람들이 선택을 통해서 저절로 가려지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남의 허물을 잘 따지는 것을 똑똑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 새로운 기운을 만들 생각을 해야 한다. 역적질만 하지 않는다면 어차피 각자의 선택으로 善惡(선악)이 저절로 가려지고 영혼의 거울로 판단이 선다. 그래서 참 사람이 나오면 生死判斷(생사판단)이 선다고 밝혔다. 지금은 타인 걱정보다는 자신의 삶을 잘 살아야하며 자신의 허물을 잘 털어서 옳은 길을 따라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은 함정이 많아서 바른 길을 가기가 지극히 어렵다. 道(도)로 다스리는 道政(도정)이 시작된 이상 앞길을 열어서 어느 길이 바른 길인지 알려줘도 그 길을 걷는 것은 각자의 선택이다.
'밝음'을 향해서 난 길을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야지 교주를 찾아 헤매는 신앙을 하면 잘해야 노예밖에 안된다. 그러니 잡교와 개독의 꼬라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종교가 사람을 얽매고 교주에게 의탁하도록 만들면 그 영혼은 결국에는 어디 갈때가 없는 영혼이 된다. 예수가 스스로 메시아가 아니라고 했는데 말세의 끝에 도달하여 진짜 메시아가 세상을 改正(개정)하면 뭐라할지 뻔한 것 아닌가? 그때도 노예 신앙 얼마나 했나 묻지 않는다. 밝음으로 난 길을 향해서 얼마나 부단히 노력하며 걸었는지 그것을 살핀다. 결국 道(도)와 德(덕)이 아니면 설곳이 없으며 道(도)와 德(덕)으로 보니 종교가 모두 무너진다.
종교는 설곳이 없다. 밝음이 드러난 곳에서 어둠이 사라지듯이 중간에 거간꾼은 모두 필요없다. 교주도 먹사도 대리인 노릇을 할려고 하지만 뭘모르니 그지경이지 수행이란 자신의 내면에 있는 밝음으로 향한 길을 부단히 걸어가는 것임을 하루라도 빨리 깨닫는것이 좋다. 이 길을 모르니 2030과 하원갑자 이대남이 가증한 것의 날개가 된 것이며 그들은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시기에 스스로의 선택으로 三大將(삼대장)을 따라서 무저갱으로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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