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공사로 보면 古阜(고부) 臥龍里(와룡리)와 雲山里(운산리) 申京洙(신경수)의 집을 오고가며 공사를 보며 天子被擒度數(천자피금도수)를 보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를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에티오피아 하일리 구비 화산이 12000년만에 폭발한 당일 2025년 11월23일 음력10월4일 병신일에 淸道(청도) 雲門山(운문산) 자락 응기와 大邱(대구) 臥龍山(와룡산) 자락 응기가 발생했으니 여기서 '구름 雲(운)'과 臥龍(와룡)은 天子被擒度數(천자피금도수)와 이어지며, 한걸음 더 나아가면 天子浮海上公事(천자부해상공사)와도 이어진다.
그 당시 이 天子被擒度數(천자피금도수)에 참여한 사람은 1907년 정미년으로 알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속수전경은 오히려 丙午(병오) 불말로 전하고 있으니 金自賢(김자현)만 알고 있는 내용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즉 속수전경이 전하듯이 따로 그렇게 알고 있어라고 언질을 주었다고 전하고 있다. 필자가 오늘에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5월25일 음력4월9일 기해일 정묘시 '大田市(대전시) 西區(서구) 月坪洞(월평동) 186-7' 甲川(갑천)변 응기다. 大田(대전)에서 응기가 나타난 것은 天子浮海上公事(천자부해상공사)에서 辛元一(신원일)이 기차를 타고 서울로 들어간것과 이어진다.

2025년 11월23일 丙申日(병신일)이 申京洙(신경수)의 성과 일치하며 그가 살던 雲山里(운산리)처럼 그날 雲門山(운문산) 자락 응기로 구름을 가리켰다. 그로부터 184일차 5월25일 음력4월9일 기해일 정묘시 '大田市(대전시) 西區(서구) 月坪洞(월평동) 186-7' 甲川(갑천)변 응기가 나타났으니 더더욱 이치에 부합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一元數(일원수)를 상징하는 辛元一(신원일)의 이름처럼 180일을 채운후 그의 출발지에서 응기가 나타났으니 이치에 부합한다. 여기에 더해서 그의 이름이 가지는 총획수가 12획이니 一元數(일원수) 180일에서 12일후가 192일차가 된다.
이는 곧 2025년 11월23일 병신일에서 182일차가 6월2일 음력4월17일 정미일이 된다. 이렇게 보면 지번 '186-7'을 도하면 193이 되어서 192일차가 辛元一(신원일)이 가진 도수가 다하는 날이 되고 193은 5월25일 음력4월9일 기해일 정묘시 '大田市(대전시) 西區(서구) 月坪洞(월평동) 186-7' 甲川(갑천)변 응기의 지번이 가리키는 도수가 다하는 날이 되어서 그 날이 6월3일 음력4월18일 무신일이 된다. 왜 이렇게 하루가 어긋났을까 생각해보면 辛元一(신원일)이 올라가자마자 天子浮海上(천자부해상)이라고 써서 崇禮門(숭례문)에 붙혔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이 출발했다는 전제하에 대전에서 서울은 기차로 당일 코스다. 그러나 汽船(기선)으로 群山(군산)에서 인천으로 가면서 밤을 넘겼으니 그 다음날이 된다. 그리고 辛元一(신원일)이 일을 행하지 않아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렇게 보면 앞뒤가 맞다. 순서상 天子浮海上公事(천자부해상공사)를 1906년 병오년에 보았고 天子被擒度數(천자피금도수)를 1907년 정미년에 보았다고해도 결국 이 두 공사는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속수전경'은 다른 자료와 달리 이 天子被擒度數(천자피금도수)를 丙午(병오) 불말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金自賢(김자현)에게만 天子被擒度數(천자피금도수)가 곧 天子浮海上(천자부해상)을 완성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전한 것이다. 천지공사는 각 공사가 이유와 목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그 당시 사람들은 헤아릴 방법이 없었다. 서로 보던 것이 달랐기 때문에 어떤 연유로 공사를 행하는지 몰랐고 또한 그 당시에는 대부분 "때가 되면 안다"로 그 이유를 숨겼다. 이런 전후 사정을 알려면 다른 예언서의 해석이 정확히 풀려야 하며 그 바탕위에서 천지공사의 내용을 봐야 왜 그런 공사를 봐야했는지 실마리가 풀린다.
다 몰라도 반이상은 그래도 풀어서 알아야 전체 그림을 알수 있지만 사람들은 開闢(개벽)만 기다리다가 설레발치기 일쑤였으니 모르는 것을 말만 장황하게 해왔다는 것이 드러난다. 공부를 한다고 해도 알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지금의 현대인은 근기가 너무 박약하여 눈앞의 이익에 발끈하지 이런 공부를 좋아하지 않으며 그런데다가 심성마저도 배금주의에 물들어 있으니 눈앞에 이익과 쾌락에 쩔어서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종교마저도 자극적인 한탕주의에 몰입하여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니 무슨 공부가 될까? 결국 이치는 커녕 허송 세월만 보내기 일쑤였다.
특히 서교가 開闢(개벽)을 화려하게 치장하여 거짓에 거짓을 더하니 결국 그들은 마지막에 대전쟁이 벌어지고 나서야 큰일 났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니 한심한 노릇이다. 구약과 신약을 이치로 보면 동양의 예언서와 천지공사와 이상하리만치 겹친다. 이미 그것에 대해서 많은 글을 올렸으며 '왜 그럴까?'라는 깊은 의심을 품고 있는 차에 타나크를 보니 결국 야훼가 '열방이 조화롭게 사는 세상'을 목표로 했다는 것을 보고 전체 흐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우리식으로 보면 大同世界(대동세계)가 바로 그것인데 서교에서는 오랜 세월속에서 자신들만이 특별한 종교라고 강제로 주입해 왔으니 이런 이치를 모른다.
그러나 타나크 에스겔서에서 예언하듯이 야훼가 스스로 자신이 누구임을 드러낸다고 했으며 동양에서는 大同世界(대동세계)가 열리면서 벌어지는 일의 과정을 예언했으니 그 결마저도 대부분 겹치고 있다. 지금은 종교가 아무런 프리미엄을 제공하지 못하는 시기다. 계급장 다 떼고 이치로 딱 보면 왜 그렇게 글을 쓰고 올렸는지 수행의 깊이에 따라서 알 수도 있다. 아나 모르나 결국 모두가 開闢(개벽)의 본판이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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