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이야기

열린 운수와 응기 - 193.천지공사와 예언서의 결말

성긴울타리 2026. 5. 16.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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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龍得珠(황룡득주)의 기점이되는 2월2일 음력12월15일 정미일 '高興郡(고흥군) 南陽面(남양면) 月亭里(월정리) 산221' 望珠山(망주산) 자락 응기로부터 104일차에 이르렀다. 이 연장선에서 5월14일 음력3월28일 무자일 '淸州市(청주시) 興德區(흥덕구) 江內面(강내면) 塔淵里(탑연리) 산43-9' 수타리봉 일명 雄鷄峯(웅계봉) 응기는 鷄龍(계룡)의 운수가 열린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은 水氣(수기)가 돈 이후에 현실로 나타나며 같은 목적으로 행해진 순흥안씨재실공사의 장소가 飛龍山(비룡산) 자락이라는 것을 알고 보면 그것이 드러난다. 

그런 의미에서 水氣(수기)를 돌리기 위한 공사라는 목적을 가진 순흥안씨재실공사에서 萬修(자만수)를 부르는 대목이 있으니 이는 서양 별자리로 보면 황소자리 옆 쌍둥이 자리의 머리에 해당하는 영역을 가리킨다. 서양별자리를 동양의 별자리로 살펴보면 그런 것이며 紫萬修(자만수)는 西方七宿(서방칠수) 奎婁胃昴畢觜參(규루위묘필자삼)중 여섯번째 별자리를 가리킨다. 

쌍둥이 자리에 속하는 萬修(자만수)가 속해있고 쌍둥이 자리는 5월21일부터 6월21일까지의 영역인데 萬修(자만수)가 머리 부분에 위치하고 있어서 머리에 해당한다. 

하루는 여러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 앞으로 천하에 水氣(수기)가 고갈될 참이니 水氣(수기)를 돌려야 하리라"하시고, 그 뒷산 피란동 안씨 제실에 가사 그집앞 동쪽 우물을 댓가지로 한번 저으시고 가라사대 "음양이 고르지 못하니 무슨 연고가 있으니 제실에 가서 물어보라" 안내성이 명을 받고 제실에 가서 사연을 물으니, 재실직이는 사훌전에 죽고 그의 처만 있거늘 돌아와서 사유를 아뢰니 또 가라사대 "다시 행날채에 가서 보라. 딴 기운이 떠서 있다". 내성이 그 행낭방에 가서 보니 행상하는 남녀 두사람이 들어있거늘 돌아와서 사실을 아뢰니, 선생이 이에 재실 마루 위에 오르사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서천(西天)을 바라보고 "만수"를 고창케 하시고 가라사대 "이 가운데 동학가사를 가진 자가 있으니 가져오라"하시니, 과연 한 사람이 가사를 내어 올리니 선생이 그책 중간을 펴시고 한 귀절을 읽으시니 "詩云(시운) 伐柯伐柯(벌가벌가)여 其則不遠(기측불원)이라. 내 앞에 보는 것은 어길 바 없건마는 이는 도시 사람이요, 부재어근이라. 목전지사 쉽게알고 심량없이 하다가서 말래지사 같쟎으면 그 아니 한일런가". 처음에는 가는 소리로 한번 읽으시니 대낮에 문득 뇌성이 대발하거늘, 다시 큰소리로 읽으시니 뇌성이 대포소리같이 일어나서 천지를 진동하니 화약냄새가 코를 찌르는지라. 또 지진이 일어나서 천지를 진동하니, 모든 사람이 정신을 잃고 엎푸라지거늘 선생이 안내성을 명하여 각기 물을 먹이니 모두 일어나는지라.
[출처] 동곡비서(銅谷秘書)

 

水氣(수기)를 돌리는 공사에서 서쪽 하늘을 보고 萬修(자만수)를 부르는 것으로 쌍둥이 자리의 머리에서 그 운수가 시작될 것을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쌍둥이 자리가 5월21일부터 6월21일까지 절기상 소만(巳)과 망종(丙)의 영역이니 저절로 "小滿芒種(소만망종) 頭尾(두미)로다"의 영역을 가리키고 있다. 이를 통해서 채지가의 내용과 천지공사가 전하는 바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공사의 목적이 水氣(수기)를 돌리는 공사라는 것을 밝히고 있으니 "와지끈"한 후에 胡僧禮佛(호승예불)이 발음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동안의 문제는 이 운수가 어느해를 가리키는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天子浮海上(천자부해상) 度數(도수)를 보았으니 天地神明(천지신명)들이 잔치 끝에 너희들에게 무량복락(無量福樂)을 가지고 와서 나를 찾을 것이니 나의 간 곳을 속임 없이 가르쳐주라. 그런 좋은 복을 너희들만 하지 말라. 방금 만난 丙午(병오)는 요깔고 받으나 오는 丙午(병오) 불말(火馬)을 뉘가 탈까? 큰 福(복)은 덜컥 체여야지 으름어름 하면 福(복)이 있느냐?"하시고 웃으시며 "너희끼리만 받지 말고 내 있는 곳을 잘 가르켜주라" 하시고 떠나시는지라. 從徒(종도)들이 모두 좋아하며 "이제야 한상 받고 좋은 일이 있으려나보다. 甲七(갑칠)은 한몫을 더 받을 껄? 선생님은 어찌 甲七(갑칠)이만 福(복)을 지으라고 시키시는고" 하고 기다리던 중 의외에 순사 십여명이 와서 從徒(종도)들을 전부 체포하고 선생님을 찾기로 하도 기가막혀 선생님 계시는 곳을 일러주니 순사들이 질풍같이 다려가서 선생님을 붙들어다 從徒(종도)들 앞에 잡아다 놓고 체포를 할려 하니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갈터이니 그저 가자! 돌아 오는 丙午(병오)는 좋을런가? 한번 궂으면 한번은 좋을 테지." 하시니 순사들이 들은 체도 않고 그저 古阜(고부) 警務廳(경무청)으로 데리고 갈 때 선생님이 自賢(자현)을 불러 가라사대 이 소식이 집에 들어가면 금번 서울서 科擧(과거) 했다는 소식만큼이나 즐거워할까? 가족은 하여턴지 자네는 그 소식으로 알고 있소" 하시니라.
<속수전경>

 

속수전경은 결국 병오년을 가리키며 1966년 병오년은 궃은 해이며 2026년 병오년은 좋은 해가 될 것을 위와 같이 전했다. 이를 통해서 천지공사가 2026년 병오년을 특정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三道峰詩(삼도봉시)도 그 끝을 명확히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我國本局(아국본국), 以玄武六緯推之(이현무육위추지), 則康獻起於壬申(즉강헌기어임신), 其數六七七七(기수육칠칠칠).
- 우리나라 本局(본국)을, 玄武(현무)와 六緯(육위)로써 推定(추정)해 보면, 康獻大王(강헌대왕)은 壬申에 일어나서, 그 운수가 6777이다.
四十二體本圖除之(사십이체본도제지), 則零數四七(즉영수사칠), 故歷之不過二十八而(고력지불과이십팔이).
- 이것을 42體(체)의 本圖(본도)로 除(제)한다면, 零(영)의 수가 47이기 때문에, 지나는 것이 28에 지나지 않는다.
丙午相冲(병오상충), 申子相合(신자상합), 二八之君生於黑鼠(이팔지군생어흑서), 而其數爲五十四(이기수위오십사).
- 병오에 상충하고 신자에 상합하니 二八之君(이팔지군)이 검은 쥐에 태어나고 그 헤아리는 數(수)가 만54세에 이른다. 
<三道峰詩(삼도봉시)>

 

나이 혹은 수명이 아니라 셀 數(수)를 사용했으니 글자의 의미를 자세히 봐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1972년 임자년을 기준으로 만54년을 채우는 해가 2026년 병오년이 된다. 그래서 丙午相冲(병오상충)으로 丙午(병오)에 '서로 어긋난다'고 밝히고 있다. 이 相冲(상충)은 단순히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물리치거나 자신이 물러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천지공사와 예언서의 예언이 같은 것을 가리키고 있다. 결국 2026년 병오년에 다가오는 운수가 대전쟁과 병겁이 와서 정화의 날이 시작되고 새로운 시대가 열려서 열방이 조화롭게 사는 세상이 열릴 것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일관된 흐름으로 살펴야 하며 순서가 있어서 어느 해, 어느 방위인지 살펴야 했다. 그것이 나와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성급한 성격과 급한 마음에 제풀에 스스로 걸려 넘어진 격이 되었다. 그러니 開闢(개벽)의 날짜만 헤아리며 살지만 정작 그 開闢(개벽)이 언제인지 모르면서 찍기만 하는 병이 만연했다. 자고로 欲速不達(욕속부달)이라고 한것은 욕심이 앞서면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것을 돌려서 보도록 만들기 위해서 응기가 가리키는 도수를 끝까지 풀면 開闢(개벽)의 시기를 알 수 있다고 밝혔고 응기의 끝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小滿(소만) 芒種(망종) 頭尾(두미)로다"를 가리키고 있다. 

 

저절로 종교팔이들의 근기가 드러나는 과정이었고 채에 거르는 과정이 되었으니 알려고 했으면 끝까지 파야 한다는 이유가 여기 있다. 위 속수전경을 남긴 金自賢(김자현)은 金亨烈(김형렬)과 함께 고부 경무청에서 상제영감과 더불어 한방에 갇힌 사람이라 위 정보가 기존 남은 자료들중에서도 위 부분은 특별하다고 보여진다. 그런데다가 三道峰詩(삼도봉시)를 제대로 해석할수 있는 안목이 있었어도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관점만 다른 것은 이 二八之君(이팔지군)의 정체성을 정확히 알아야 했지만 사람들의 안목이 그것에 미치지 못했으니 해석이 산으로 갔다. 

 

이 말은 君子眼(군자안)을 가진 사람이 나와서 그것을 정확히 해석할 때까지 사람들이 남의 다리 긁는 소리와 헛다리 짚고 산다는 것을 가리켰다. 한자를 많이 안다고 예언서를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은 안목의 문제이며 현실이 가리키는 사건이 예언서의 어느 부분과 일치하는지 그것을 알아낼 안목이 없으면 글자만 안다고 해석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이치로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천지차이며 가방끈이 아무리 길어도 君子眼(군자안)이 없으면 미래를 제대로 읽을 수 없다. 그래서 일찍 밝혔지만 원전이 없는 예언은 예언으로 보지 않는다. 

 

원전이 있어야 정확성과 함께 맞는지 틀렸는지 살피지만 지금 사람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화려한 동영상을 만들기 즐기지만 그 내용을 보면 볼 것이 없다. 그와 달리 이렇게 문자로 남긴 예언서는 저자의 깊이와 관심사에 따라서 기술하는 방법이 다를뿐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것을 알아볼 안목이 있는 사람이 볼 때는 눈이 부실정도로 빛이 난다. 요즘 사람들이 겉멋에 취해서 깡통 소리가 요란하고 눈앞의 이익에 발끈하지만 그런 품성 자체가 이미 틀렸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예언서는 밝히고 있다. 그것도 각자의 선택이며 그 선택의 결과와 후과는 때가 차면 명확하게 돌아간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이 다생겁에 살아온 삶의 궤적을 따라서 이제 영수증(Bill)을 받을 때가 다 되었다. 웃고 즐기는 가운데 이제 시간이 다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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