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안에 34%가 굳건한 역적이라는 것이 표면적으로 표출되지 않다가 문전대통령 이후에 드러나며 구체화 된것은 그동안 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가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검은 것이 희다'가 나타나 굳어지기 시작한 것은 신군부와 깊은 연관이 있다. 결국 이는 小運(소운) 42년의 기점이 되는 1980년 경신년으로 부터 열린 운수가 그것이라는 것을 예언서는 숨기지 않고 있다. 그리고 급기야 2022년 임인년이 되면서 이 세력들이 핵심 고위층으로 부상하면서 나라의 운수가 '끝 판'에 이르렀다는 것을 드러냈다. 大中華(대중화), 小中華(소중화) 할것없이 다 망하는 운수가 열렸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그런데 이 운수를 타나크 다니엘서가 해석한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의 꿈과 흐름이 일치해서 처음에는 좀 놀랐다. 왜냐하면 예언의 범위가 단순히 동북아의 미래가 아니라 전세계로 확대되는 순간이 되었으니 말이다. 온갖 재료로 만들어진 '우상'이 사람이 손대지 아니한 돌인 '뜨인 돌'에 의해서 그 '우상'이 와르르 무너졌고 그 우상의 잔재 또한 여름 타작 마당의 겨처럼 사라지지만 이 '뜨인 돌'은 오히려 큰 산을 이루었으니 이를 다니엘이 해석하면서 '우상'을 열강에 비유하며 그 나라들이 '뜨인 돌'에 의해서 와르르 무너져 사라지고 이 '뜨인 돌'이 큰 산을 이루듯이 새로운 나라가 들어서고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고 예언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꾼 꿈은 지금 세상에 존재하는 열강들이 앞으로 어떤 운명에 처할지를 예언한 것이며 말세의 끝에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을 예언한 예지몽이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몰락이 시작되었으니 이스라엘의 끄득임에 속아서 '이란 전쟁'을 일으켰으니 '뜨인 돌'이 나올 때가 다되어 간다. 응기로 보면 '뜨인 돌'의 운수는 2025년 5월7일 음력4월10일 병자일 무술시 '慶州市(경주시) 山內面(산내면) 乃日里(내일리) 산181' 斷石山(단석산) 자락 응기와 5월7일 병자일 무술시 '慶州市(경주시) 外東邑(외동읍) 冷川里(냉천리) 산59-12' 磨石山(마석산) 자락 응기로 시작되었다.


응기는 기운의 변화를 반영한다고 밝혔다. 斷石(단석)의 상은 돌을 쪼개는 것이며 磨石(마석)의 상은 그 돌을 갈아서 다듬는다는 것을 드러냈다. 氣運(기운)의 변화를 반영한 응기가 이런 변화를 드러내는 가운데 현실도 또한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런 응기적 흐름을 보면 이미 밝혔듯이 '야훼'의 정체성이 의심스럽다. 세상사람들이 이런 흐름을 알지 못하니 세상이 단절된 것으로 여기지만 내밀한 이런 흐름을 알고 보면 세계는 하나로 열려있고 또 현실도 그렇게 될수 있다는 '희망'이 보인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즉 세상의 흐름이 단순한 흐름이 아니라 거대한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기이한 것은 이런 氣運(기운)의 변화가 이 땅위에서 일어난 것이며 그만큼 이 땅의 무게가 무겁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 이를 통해서 '뜨인 돌'의 정체가 巽石(손석)이라는 것이 명확해졌고 절기로 볼 때 곡우(辰)로부터 四巽風(사손풍)이 되니 斷石山(단석산)과 磨石山(마석산) 자락 응기가 나타난 2025년 양력5월7일은 절기상 입하(巽)가 되니 이치로도 巽石(손석)의 방위에 부합하고 있다. 이와같이 氣運(기운)으로 보면 이미 동서양이 하나의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거대한 새로운 시대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뜨인 돌'은 단지 '사람의 아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 '뜨인 돌'은 巽石(손석)으로 바람이 불 것을 가리키는 것이며 동남풍이 불면 이름 없는 무서운 질병이 나온다고 천지공사는 경고하고 있다. 이것이 병겁의 정체이며 대전쟁과 병겁을 통해서 '정화의 날'을 열고 세상을 정리한다고 천지공사는 전하고 있다. 한마디로 타나크의 말세 최신 업데이트 버전이 천지공사에 있다는 의미지만 이치로 보지 못하고 종교의 벽에 가리면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이런 흐름을 굳이 영화로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리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다. 영화는 허구지만 이치로 본 기운의 흐름은 현실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돈을 벌고 인기를 얻기 위해서 유튜브를 한다. 물론 그러면 풍요해지고 좋지만 필자가 하는 '예언의 목적'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튜브를 활용하는 것을 중단했지만 앞으로 그럴 필요가 있다면 다시 유튜브를 이용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필자의 예언이 그동안 大勢(대세)의 흐름을 따라서 정확했던 것은 현실과 氣運(기운)의 기저에 흐르는 理致(이치)를 정확히 간파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말은 누구나 이 理致(이치)를 터득하면 필자처럼 예언을 하고 앞날을 읽을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수한 자료와 책도 더불어서 봐야 하며 어학적 지식도 충분히 갖추면 갖출수록 좋다.
솔직히 말하면 불교의 초견성은 공부의 시작일 뿐이며 이제 본격적으로 공부할 준비가 기본적인 사항에서 갖추어졌다는 것일 뿐이다. 초견성을 하고나면 능력도 좋아져서 세상 공부 다한 것처럼 자신감이 뻗어나오지만 이때 이것을 지혜롭게 해결하지 못하면 '마구니'로 바뀌는 것은 금방이다. 사람들이 종교에 가로막히면 독단적이며 이기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지금의 유대인들이 잘 보여주고 있다. 자신들이 하늘의 간택을 받은 민족이라는 착각에 빠져서 오만해지고 교만해졌으니 惡(악)을 행하면서도 厚顔無恥(후안무치)해졌으며 그로인하여 무량한 죄업과 죄악이 쌓였다. 현실도 이미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https://youtu.be/_BScBdpa-6s?si=j32XzDGYoLfTGued
저런 사례는 한두건이 아니며 지금 이스라엘이 고의적으로 '제노사이드'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는 넘쳐난다. 저러니 지금의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은 필연적으로 망한다. 악업과 죄업을 쌓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천벌이 떨어질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지금의 유대인들이 타나크 다니엘서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팔이 안으로 굽으니 자신들의 허물을 보지 못하고 죄악과 죄업이 쌓이는 것을 방임하기 때문이다. 이미 지금의 이스라엘 땅에 사는 유대인들은 가해자가 되는 순간부터 망한 것이다. 2025년 을사년에 나타난 뜨인 돌의 상은 그들 또한 무너진 '우상'처럼 쓸려나갈 것을 가리키고 있다.
유대인은 인류사의 흐름에서 두 번째로 잠시 선택 받은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기회를 날려먹었으며 이미 타락하고 부패한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현실이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첫 번째 선택은 '열방이 조화롭게 사는 세상'을 꿈 꾼 丹朱(단주)로부터 시작되었다. 즉 기원전 약2300년 전에 사그라 들었으며 그로 인하여 두번째로 선택받은 이가 기원전 약2000년 전의 아브라함으로 그로부터 유대인의 기원이 시작되었다. 그들이 마치 인류사의 본류이자 장남인 것처럼 꾸미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봤을 때 지구의 반쪽만 생각하는 편협한 소리다.
이런 역사적 흐름으로 보면 丹朱(단주)의 꿈이 깨지고 나서 비로소 간택 받은 것이 유대인들의 시조라고 주장하는 아브라함이다. 한마디로 인류사로 볼 때 아브라함이 많은 민족의 시조이지만 그중에 유대인이 맏이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인류 전체로 볼 때는 택도 없는 소리다. 이런 민족사적 흐름 위에서 종교가 자라나서 독버섯이 되었으니 앞으로 세상의 모든 종교가 사라지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 '뜨인 돌'이 예수라고 주장하는 것도 한참 모르는 소리며 오히려 개독과 잡교의 부패와 타락이 보여주듯이 지금 세상에 종교란 안하느니만 못한 것이 되었다는 것을 현실이 잘 보여주고 있다.
이미 2025년 5월7일 음력4월10일 병자일로부터 구원의 氣運(기운)이 본격적으로 움직일것을 2025년 5월7일 음력4월10일 병자일 무술시 '慶州市(경주시) 山內面(산내면) 乃日里(내일리) 산181' 斷石山(단석산) 자락 응기와 5월7일 병자일 무술시 '慶州市(경주시) 外東邑(외동읍) 冷川里(냉천리) 산59-12' 磨石山(마석산) 자락 응기가 드러냈다. 이는 곧 동남풍이 불 것을 가리키는 것이며 '느브갓네살 왕'의 꿈처럼 우상이 뜨인 돌에 무너져서 사라지듯이 열강은 모두 사라질 것을 예고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지금의 미국이 과거와 완전히 다르며 망하는 길로 들어섰다.
종교가 진실을 가리고 오히려 조작을 해왔으니 이치가 아니면 그 너머에 있는 진실을 보지 못한다. 앞으로는 事必歸正(사필귀정)으로 돌아가는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고 거짓은 와르르 무너진다. 그런 가운데 세상의 모든 종교가 무너지는 것도 그런 이유다. 밝음이 드러나면서 저절로 어둠은 물러가고 거짓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여기에 더해서 滅惡山(멸악산) 자락 응기까지 나타났으니 그런 거짓의 원흉들이 모두 제거될 것을 응기는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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