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10월 초순이자 절기상 소설(亥)이었던 11월23일 음력10월4일 병신일은 흐르는 세월의 중요한 맥점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상강(戌) 11월1일 음력9월12일 갑술일 전후에 경주 APEC을 통해서 용과 뱀이 만났다면 11월23일 병신일은 새가 무리를 짓는 것을 드러냈고 12000년만에 에티오피아 하일리 구비 화산이 폭발했다. 이 두 사건은 절기상 상강(戌), 입동(乾), 소설(亥)이 가리키는 西北方(서북방)에서 벌어졌으며 赵公山碑文(조공산비문)의 '용과 뱀이 모일 때를 기다리면 새로운 주인이 누구인지 알게된다'인 '待到龙蛇会(대도용사회) 谁是谁的主(수시수적주) 예언을 가리키는 단서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동안 종교에 속아서 화려하게 자신들에게 알려줄줄 알고 있었지만 진실과 진리는 간단하고 직접적이다. 그래서 일찍 밝혔듯이 일반인이 알 때는 대재앙이 벌어질때야 "어이쿠~"하며 깨닫게 된다. 진짜는 주장할 것이 없으며 이어지는 응기와 현실을 통하여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정작 대재앙이 벌어질 때면 늦어도 너무 늦은 일이 된다. 오죽하면 玉山眞帖(옥산진첩)에서 '道(도)가 하늘에서 내려온다 말라! 죽을 지경이 되면 다 따른다'인 '莫道自天降(막도자천강) 盖從瘠下云(개종척하운)'이라고 했을까. 결국 사람들은 종교가 심어둔 환상에 속아서 한심하게 중요한 기회를 날려버리기 마련이다.
스스로를 간절히 진실과 진리를 알려고 하고 스스로를 구할려고 해야 구원의 길이 보이며 그 길은 화려하게 포장하고 있지 않으며 열려있어서 얼마든지 출입이 자유롭다. 결국 길은 있지만 그 길을 못보는 것은 각자의 정성과 노력의 부족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일찍 밝혔듯이 진짜는 자신이 누구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긴 세월의 흐름과 함께 大勢(대세)를 따라서 탈선하여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가이드 역할을 한다. 영화가 가리키듯이 화려하게 등장하여 폼나게 사람들을 인도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종교가 심어둔 환상에 속아서 진실과 진리를 이해할 안목을 가지지 못하면 허상에 속기 마련이다.
개독과 잡교가 그 토양 위에서 번성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것도 우주의 긴 흐름과 지구의 시간속에서 한계가 다가오고 있다. 자신의 착각과 환상에 사로잡혀서 메시아가 聖人(성인)이 이럴것이라고 우기지만 결국 그런 허상속에서 스스로의 선택으로 파멸을 선택하는 일이 종교에서는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 말세의 끝에는 "나를 섬겨라, 나를 믿어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生死判斷(생사판단)이 선다는 것은 집행을 의미하지 누구를 믿고 따르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재앙이 벌어져서 다 정리 된후에야 비로소 따르는 일이 벌어진다.
그전까지는 목넘기기 어려운 운수로 인하여 그것에 대한 경고와 함께 스스로의 선택으로 蒼生(창생)의 자격을 얻거나 유지하도록 돕는 역할을 누군가는 하기 마련이다. 즉 "나를 섬겨라, 나를 믿어라"는 식의 종교놀이는 하지 않는다. 여기서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이 작용하며 마치 누군가를 믿어야 살 길이 열릴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종교의 폐해로 인하여 생긴 현상이다. 자신이 평상시에 바른 정신으로 옳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종교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하물며 지금과 같이 과학 문명이 제패한 세상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말세의 끝에는 심판의 날이 열리며 자격이 안되면 쓸려나갈 뿐이다.
어느 종교를 믿고 어떤 교주를 따르고는 아무런 加護(가호)도 안되는 한심한 종교놀이일 뿐이다. 자신이 익고 익어서 道(도)가 깊어지고 德(덕)이 두터워져야지 누구를 뒷배로 두었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를 사는 식의 한심한 잣대로는 대동세상은 커녕 지금처럼 난장판이 되기 딱 좋다. 그러니 말세의 끝에 종교란 안하느니만 못하다. 31번 1월11일 음력11월23일 을유일 기묘시 '鎭川郡(진천군) 鎭川邑(진천읍) 山尺里(산척리) 610' 武帝山(무제산) 지맥 응기와 32번 1월11일 음력11월23일 을유일 임오시 '旌善郡(정선군) 北坪面(북평면) 北坪里(북평리) 산1' 白石峯(백석봉) 자락 응기는 이미 新主(신주)의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山尺(산척)은 자를 대어서 재어 보는 것이다. 여기에 천간 6번째 己(기)에 지지 10번째 酉(유)로 '누런 닭'이 죽지 털 것을 가리키고 있다. 武帝(무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응기다. 12월7일 음력10월18일 경술일 병술시 '居昌郡(거창군) 加祚面(가조면) 士屛里(사병리) 1605' 응기의 지명유래에 '장군과 병사'를 가리키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동쪽에 飛鷄山(비계산)으로 닭이 날 것을 가리켰다. 그로부터 36일차가 1월11일 을유일이었으니 武帝山(무제산)과 白石峯(백석봉)은 이 '나는 닭'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마련이었는데 지번 610으로 己酉(기유)를 가리키며 '누런 닭'이 죽지 털것을 드러냈다. 응기의 이런 흐름은 목성의 衝(충)이 1월10일 음력11월22일 갑신일에 계유시에 벌어졌다. 이것은 2014년 음력11월16일 임오일에서 11.86년의 공전주기를 채우며 남방칠수의 머리인 井宿(정수)의 東井(동정)에서 목성의 衝(충)이 발생했으니 四明堂(사명당)의 도수를 채우면서 龍(용)의 정체성을 드러낼 것을 예고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1월11일 음력11월23일 을유일에 날으는 닭이 '누런 닭'이라는 것을 응기가 명확히 했다. 12월7일 음력10월18일 경술일 병술시 '居昌郡(거창군) 加祚面(가조면) 士屛里(사병리) 1605' 응기는 조공산비문의 예언중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천하에 칼과 병사가 일어나면 四海(사해)가 새로운 주인에게 돌아간다'인 '天下刀兵起(천하도병기) 四海归新主(사해귀신주)를 가리키고 있다. 오늘이 그로부터 41일차로 1월16일 음력11월28일 경인일이다. 사람들은 도수가 곁을 지나가도 모른다. 이어진 현실과 응기는 이미 목 넘기기 어려운 운수가 임박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지금은 그냥 세월 보내기하는 시기가 아니다. 이어지는 응기와 현실은 이미 기운의 변화로 운수가 바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천하에 칼과 병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응기가 이미 드러낸지 오래다. 9월22일 음력8월1일 갑오일 장군의 칼인 長劍(장검)의 상이 나타났고 그로부터 77일차인 12월7일 음력10월18일 경술일의 응기로는 장군과 병사를 가리켰다. 기운의 변화는 이미 천하에 칼과 병사가 일어날 것을 가리킨 것이며 1월11일 음력11월23일 을유일에 나타난 두 개의 응기는 이미 새로운 주인이 나올 것을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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