開闢(개벽)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 문제를 덮는 도구로 바라보면 "언제 開闢(개벽)이 오나?"를 기다리기만하며 자격 획득에 아무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병이 된다. 그런 開闢(개벽) 질환에 걸린 사람들이 많으며 그로 인하여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탕주의 종교팔이 사기꾼에 걸려서 정신과 재산을 빨려서 현실의 삶을 등한시하는 일들이 흔하게 벌어졌다. 이런 종교적 병폐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것은 동서양이 공통적으로 종통 놀음을 벌리며 거짓에 거짓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종교 자체가 진실과 진리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없으며 과거의 유산중 '카더라'를 진실이라고 여기는 사기가 만연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치'로 세상을 보는 안목을 얻지 못하면 결국 진실과 진리와는 영원히 안녕이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호랑이를 보고 "호랑이를 봤다"고 말 못하고 고양이를 보고 "고양이를 봤다"고 말을 못하는 병에 걸려서 고양이를 호랑이라고 거짓말 하는 경우가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 지금 사람들이 큰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은 특정 교단에 포함되어서 특정 종교에 심취하면서 그들의 言行(언행)에 동조하면서 순종적 착함을 지니면 종교가 잘못되어도 구원을 받는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어리석게도 종교 자체가 가진 업보를 그 종교를 믿는 교인 전체가 더불어 받는다는 것을 모른다.
道(도)와 德(덕)을 바탕으로 자격을 판단한다는 것은 종교는 고려대상조차도 아니다. 아무런 프리미엄도 없고 교주를 얼마나 신실하게 믿었나는 더더욱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직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바탕으로 道(도)의 깊이와 德(덕)의 두터움이 얼마나 되는지 살펴서 판단하게 된다. 이러니 순종적 착함이 가지는 맹점이 오히려 결과론적으로 종교적 맹신으로 이어져 죄악과 죄업의 덩어리가 되는 경우도 흔하게 벌어진다. 신앙에 대한 맹신으로 죄악과 죄업을 지으면서도 죄악과 죄업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게 벌어진다는 의미다. 이래서 말세의 끝에 종교는 안하느니만 못하다.
그런데 지금 유대교, 이슬람, 기독교, 천주교를 보면 전부 노예 신앙을 자처하고 있다. 또 살펴보니 초기 신앙 단계에서는 '여호와'와 '예수'를 동일시 하는 일도 흔하게 벌어진것으로 보인다. 종교가 운수를 얻어서 국교가 되고 대다수 국민이 그것을 믿는다고 해도 그것이 진리와 진실이라는 것은 아니다. '理致(이치)'로 볼 때 노예 신앙은 결국 주인과 종의 관계인 주종 관계로 모든 일을 바라보는 것이 되니 '진리'와 '진실'을 볼 안목이 생길수 없다. 그 종교의 품 안에서 신앙으로 편안할 수 있어도 지금과 같이 전세계가 열려 있는 상태에서 보면 중국과 인도 만으로도 이 서교 종교적 머릿수를 압도하고 남는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나무에 불이 붙고 있는 모습의 야훼를 만나서 명호를 물으니 "나는 나다"라는 말이 어떤 관점에서 이야기한 것인지 유대인들은 감조차 못잡고 있다는 것을 타나크는 보여주고 있다. 이를 佛(불)의 입장에서 보면 "천상천하유아독존"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비교와 상대를 다 털어내고 존재의 본질을 깨달으면 "나는 나다"가 기본이 되는 자각으로 부터 나온다. 비교하지 않으며 비교 대상도 아닌 존재 그 자체를 이야기할 때 "나는 나다"가 되니 그 유일성을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유일성을 유일신으로 여기니 정신적 오염이 발생한 격이다.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무슨 佛(불)이 허다하게 많지만 法身佛(법신불)의 관점에서 보면 유일성을 가지며 "나는 나다"가 본질이다. 밝음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은 정신체가 어디 한둘 일까. 결국 사람들이 그렇게 여기며 유일신 신앙을 가지고 스스로 노예라고 자처하지만 이것은 정신체가 깨달음으로 향하는 관점에서 보면 한참 어긋난 상태다. 야훼가 본질적으로 이 法身佛(법신불)의 입장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인도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에서 어떻게 이해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지금 종교가 신앙이 신실하다고 여기는 것을 가만히 보면 '오직 누구'라고 여길 때라는 착각에 빠져 노예로 사는 것으로 여긴다.
이러니 타인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종교의 품 안에서의 믿음으로 변질되니 그로 인하여 오염이 극대화되면 지극히 이기적이며 배타적인 성격으로 바뀌기 마련이다. 지금 소위 종교인이라는 자들의 면면을 보면 내면으로 향한 밝음과는 등을 진지 오래며 "오직 누구"와 "믿슙니다"에 빠져서 죄악과 죄업을 무량하게 짓는 못된 言行(언행)으로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는 마구니가 되는 길을 단체로 걷고 있다. 지금의 개독과 잡교가 그런 상태이며 역적질을 하면서도 자신들은 그 믿음으로 뭐라도 된냥하는 헛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니 그 종교안의 믿음에 갇혀서 마귀가 되었지만 그런줄도 모르니 그 끝이 뻔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팔이가 교주에 대한 믿음만 가지면 천국으로 갈것처럼 장사를 하지만 한심한 소리다. 지금까지 이치를 통해서 大勢(대세)를 예언하면서 2019년 皇中(황중)에 병이오고 徐福(서복)의 해원에 동조하면 30년 공덕이 까인다는 그 정체성을 미리 알지 못했다면 전부 가짜라고 밝혔다. 그러나 불행히도 전부 가짜라는 것만 들통난 세월이니 사람들이 신앙을 한다지만 대부분 마구니가 된지 오래라는 것이 드러났다. 결국 이것은 말세의 끝에 전세계 평균 백 명중 한 명 사는 운수가 되는 원인이 되었다. 전세계게 만연한 극우적 관점은 타민족, 타국 사람들을 포함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박약하다는 것을 말한다.
백인우월주의에 빠진 정신나간것들이나 종교에 빠져서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와는 멀어진 기괴한 마귀들이 횡횡하는 지금 현실을 보면 저들이 주장하는 유일신과 저들이 주장하는 종교적 신념이란 한마디로 거지발싸개보다 못한 헛된 말에 그쳤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겨우 어쩌다가 한 명씩 본질에 접근하는 사람이 나오는 것으로는 언발에 오줌누기도 못된다. 이러니 결국 정화의 날이 열리니 말세의 끝에 부패하고 타락한 종교 세력인 黃巾賊(황건적)이 나와서 안팎으로 연대하여 여전히 죄악과 죄업을 더하고 있다. 그들이 누구라는 것은 그들 스스로의 言行(언행)이 고스란히 드러내니 신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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