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 바뀌면 일이 끝난 것인데 사람들은 화려하게 사람들이 다 알아주는 것이 일의 시작인것처럼 생각한다. 이것은 큰 착각이며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시작은 늘 그렇지만 큰일 일수록 초라하게 시작하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그것이 大勢(대세)라고 여길때 오히려 미래를 바꿀 중대한 변화가 물밑에서 움직이는 법이다. 사람들은 A.I. 시대가 왔고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와중에 응기와 현실은 神人脫衣(신인탈의)의 과정이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기술봉건주의가 미래라고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대동세계가 멀지 않다는 것을 응기와 현실이 가리키고 있다.
어느쪽을 믿느냐는 각자의 선택이지만 이미 神人脫衣(신인탈의)의 과정은 시작되었다. 그러니 2025년 11월23일 음력10월4일 병신일 새벽에 꿈을 꾸었고 이어서 에티오피아 하일리 구비 화산이 12000년만에 폭발했다. 꿈은 밤의 환시로 다가오는 미래를 가리켰고 이어진 12,000년 만에 화산 폭발은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을 가리켰다.
위 동영상처럼 흰 새가 흰 나무 위에서 무리를 이루는 꿈을 꾸었고 이어서 꾼 꿈이 옷을 갈아 입는 꿈이었다고 밝혔다. 다 갈아입지도 못하고 자동차 앞자리에 있던 흰 옷을 꺼내면서 꿈을 깼다. 결국 이 꿈은 그런 과정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가리키는 예지몽이다. 그리고 응기와 현실도 그렇게 이어졌으니 말이다. 과학의 시대 예측과 필자의 예언이 정 반대의 길을 가는 가운데 대전쟁과 병겁이 터지면 사람들이 A.I. 시대나 기술봉건주의가 인류의 미래라고 이야기한 것이 부끄러워지기 마련이다. 전세계 인구의 약1%가 살아남아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며 대동세상이 열린다는 예언이 현실이 되면 그럴수 밖에 없지 않나?
물론 살아있어야 그것도 부끄러워 할 수 있다. 어찌보면 지금처럼 미래에 대한 예측이 단적으로 갈리는 경우가 없다. 전자는 암울한 과학 미래이며 후자는 정신적 이상 세계이니 말이다. 그래서 오히려 예언을 하다보니 더 흥미롭다. 필자도 컴퓨터쪽 전공이라 이 과학 이야기가 흥미롭고 재미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세상이 '기술봉건주의'로 간다는 것은 너무 세상을 편협하게 본 것이라는 것을 과학자들은 모르고 있다. 돈만 밝히는 세상에 살다보니 정신쪽으로는 완전히 문이 닫힌 상태라는 것을 말하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세상은 道(도)와 德(덕)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다만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여기며 스스로 자멸을 길을 걸어왔지만 道化(도화)와 德田(덕전)을 통해서 道政(도정)으로 복귀하는 과정에 있다. 진정 아는 사람은 길목에서 기다리며 이 일을 시작하면 사람들이 설마하면서 웃지만 徐福(서복)의 해원과 30년 功德(공덕)이 걸린 사례 하나만 생각해도 얼마나 '道(도)로써 바른 길로 이끔'인 道化(도화)가 중요한지 드러난다. 그만한 德(덕)을 쌓을려면 그만한 일을 해야하며 공짜로 주어지는 것은 없다. 세상이 혼란한 가운데 물 밑에서 이미 道化(도화)와 德田(덕전)의 과정이 이어지는 것도 그런 배경과 이유가 있다.
세상이 혼란하니 匡正(광정)하는 것이지 아무 노력없이 그저 먹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적과 기행 그리고 교인의 머릿수로 교의 위세만을 생각하지만 말세의 끝에는 그런 것으로는 어디 비빌곳이 없다. 좋으나 싫으나 사람이 한가지로 道(도)와 德(덕)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결국 道(도)를 알아야 바른 길로 이끄니 모르면 할수 없으며 그런데 이 앎이 지식으로 채울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지금 사람들이 앞으로의 세상이 이렇다고 주장하는 것은 깊은 안목으로 보면 대부분 근거가 없다. 이렇게 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바탕으로 어떻게 바뀌어서 그렇게 되는지 정확히 그 단계를 밝혀야 한다.
그러나 모르면 神(신)의 뜻으로 돌리니 뭐인들 뿌리가 없다. 사람이 알려면 확 알아야지 어중개비가 되면 쓸곳이 없다. 결국 그로 인하여 무수한 衆生(중생)과 蒼生(창생)이 그 자격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그 죄업과 죄악은 선동한 종교팔이들에게 일일히 돌아간다. 종교가 부패하고 타락하여 黃巾賊(황건적)이 되었으며 말세에 종교는 안하느니만 못하다고 밝혔다. 이 부패하고 타락한 종교가 양산한 십대와 2030 그리고 하원갑자 이대남이 설치는 서울의 꼬라지를 보면서 역시 鶴(학) 기운이 떠나가니 한심한 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뉴스가 전하고 있다.
이미 채워지는 도수와 함께 세상의 변화는 이어지고 있으며 머지 않아서 뚝 하고 뿌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오늘같은 내일이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면 그것도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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